홀로서기 역량에 관하여
1️⃣ 얼마 전, 퇴직통보를 받은 대기업 임원 후배가 찾아왔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분노, 허탈, 후회, 불안 등의 감정이 섞여 있었습니다. 공황 장애 증상까지 있었습니다. 수십 년간 충성을 다했던 회사에서 갑자기 퇴직통보를 받으니 그런 감정에 휩싸이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수 있습니다.
2️⃣ 나도 젊었을 때는 대기업 임원들이 참 대단해보였습니다. 아우라도 있고 매우 똑똑해보였습니다. 평균적으로 사원들 100명 중 한명 정도가 된다는 임원들이기에 대단해보였고 그들 앞에서 발표하려면 긴장이 되었습니다. 큰 딜의 결정권을 가진 그들의 질문이나 반응 하나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일희일비했습니다.
나이가 들고보니 과거 어렵게 보았던 그런 임원들이 이제 참 평범해 보입니다. 물론 똑똑함과 성실함으로 훌륭한 경영을 하기도 하고 사업을 턴어라운드 시키며 회사를 위해 큰 공헌도 하지만, 이면은 한해한해 성과에 예민하며 주위 평가도 신경써야 하고 인사권자 눈치를 보며 제너럴리스트로서 노후 걱정하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3️⃣ 인사철이 되면 퇴임 임원들은 빠르게 짐을 싸서 나갑니다. 기업의 업종에 따라 빠른분들은 40대 중후반, 늦어도 50대 중후반이면 대개 퇴임이 이루어집니다. 어느 기업이건 승진 임원 숫자만큼의 퇴진이 되기에 승진잔치가 벌어질수록 숨은 퇴임자가 많습니다.
예전에 한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유명하셨던 S그룹의 부회장님이셨습니다. 그분과 30분 스케줄이라도 잡으려면 한두달은 예사로 기다려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퇴임하시고 고문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 지인분이 비서에게 연락해서 조심스럽게 한달 뒤쯤에나 약속을 잡을 수 있는지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비서 왈 "다음주도 다 비어있습니다." 현직이나 퇴직이냐를 기점으로 수많은 스케줄이 밀물같이 왔다가 썰물처럼 사라지는 것입니다. 평소 만나자는 수많은 사람들도 다 사라집니다.
사람들은 임원이나 고위직 권력자들 자체를 존경하거나 만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가진 직위나 직책에 머리를 숙이거나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위와 직책이 사라지는 순간 이와 관련된 관계나 각종 스케줄은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4️⃣ 나는 퇴직 임원들을 많이 만났기에 몇 가지 조언을 했습니다. 1) 회사나 자신을 탓하지 마라. 당신의 잘못도 회사의 잘못도 아니다. 원래 임원직은 임시직이며 책임지는 자리다. 임원은 매년 올해가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2) 한참 쉬었다가 일을 구할 생각을 하지 마라. 현업에서 떠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의 가치가 낮아진다. 3) 숨지말고 가능한 여러 사람들을 만나라. 사람을 만나야 기회가 생긴다. 4) 헤드헌터들과 적극 커뮤니케이션하라. 5) 집에 있지말고 매일 출근하라. 무언가 배우든 책을 읽든 운동을 하든 루틴을 가져라.
5️⃣ 퇴임하시고도 활발히 활동하는 분들도 간혹 계십니다. 이런 분들의 공통점은 현직에 계실 때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베푸시고, 퇴임 후 무엇을 할지 미리 준비하고 설계를 해놓으신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직'에 빠져있지 않고 '업'을 만드신 분입니다. 이에 직책이나 직위가 사라져도 홀로서기가 가능합니다.
얼마 전 독일, 중국, 싱가포르 등에서 일하고 있는 50대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노트북 하나로 어디서든 직접 자료를 만들고 전문성을 발휘하며 디지털 노마드로 일합니다. 그분이 한국에 와서 대기업에 다니는 동기를 만났는데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 친구가 문서조차도 스스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원들을 시키기만 하다보니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다 퇴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임원들이 문서를 만들고 직원일을 대신 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임원은 임원의 일이 있습니다. 단지, 시키더라도 자신의 지력, 인사이트가 분명해야 합니다.
6️⃣ 나도 그렇게 될까 봐 지금도 중요 기획, 프레임워크, 중요 발표자료들은 내가 직접 손으로 스케치합니다. 물론, 스태프 훈련을 위해서나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이 있을까 지시는 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중요한 것이라면 동시에 나도 내 구상을 작업합니다. 가져오면 비교하여 피드백합니다. 책이나 개인적 강의 자료 등은 당연히 내가 직접 워드나 파워포인트로 다 만듭니다. 이렇게 SNS에 직접 꾸준히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도 이 때문입니다.
7️⃣ 지금은 100세 시대입니다. 회사에서 아무리 잘 나간다 할지라도 50대를 넘기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커리어 포트폴리오를 항상 준비해서 언제든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by 신수정 KT 엔터프라이즈 부문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