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력 없으면 종속당하고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복종할 수밖에"
'여성 사외이사 왜 없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자본시장법 개정
"경력 단절은 생각보다 주변에서 더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여성을 찾아보기가 더 어려워요."
여성가족부 출범 이래 첫 여성 차관.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은 유리천장을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단지 '버티는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여성이 공무원 사회에서 고위직에 오른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진입 자체가 어려운 때였습니다. 특히 엄마가 된 이후에 사회생활은 더욱 고됐지만, 그만큼 그가 일궈온 것에 소중함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런 그는 이제 제3의 삶을 개척하면서 후배들이 더 편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 기꺼이 디딤돌로 나섰습니다.
'행시 4번째 여성 합격자'에서 차관까지
이 전 차관은 학창시절부터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이토록 굳건한 마음을 갖게 된 건 그가 어머니의 삶을 오롯이 지켜봐왔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경제력이 없으면 결국은 종속당하고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복종할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1980년대에 민간기업들은 공개 채용으로 여성 직원을 선발하지 않았습니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여긴 그는 행정고시 준비를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2년여의 준비 끝에 역대 4번째 여성 행정고시 합격자라는 수식어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그 시절엔 공무원의 삶도 녹록지 않았습니다. 당시 문교부(현 교육부) 소속 사무관이 됐지만, 남성 중심의 공무원 집단에서 원하는 만큼의 성장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몸소 체감했습니다. 당시 유학에서 돌아온 그는 상사로부터 '본부에는 여성 사무관이 셋이면 족하다'라는 모욕에 가까운 말도 들었다고 합니다.
9년여를 버틴 그가 선택한 우회로는 지금의 여성가족부인 정무장관실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건지 잘못한 건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나를 알아주는, 내 능력에 맞는 보직을 줄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생각했어요." 그는 여가부에서 여성특별위원회 총무과장, 여성부 기획관리심의관 등을 거쳐 보육정책국장에 올랐습니다. 이후 청와대에 입성해 행정관을 역임한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여가부 차관에 올라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차관을 지냈습니다.
엄마로서 그는 일을 몇번이나 포기해야 하는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게 '능력'이었지만, 결혼하고 난 이후 그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이들을 떼어놓고 나온 만큼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만큼 자랑스러운 엄마가 돼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다른 이들보다 유독 힘들게 올라왔던 그는 공무원의 삶과 엄마로서의 삶을 모두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여기까지 오느라고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생각하면 그만둘 수 없었어요. 어떻게든 여기서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30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딸들, 여성 후배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선 이 전 차관의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아래 '인터뷰 더보기'를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