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Story
이슬아 작가 "편집자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유쾌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복희 씨와 웅이 씨를 직원으로 고용한 출판사 대표이자, 작가와 동명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가녀장의 시대'를 쓴 이슬아 작가입니다. 지난달 19일 아시아경제 여성포럼 연사로 나선 이 작가와 손수 꾸민 서재에서 인생과 글, 영화와 음식, 직업과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작가와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위해 지면에 미처 담지 못했던 시시콜콜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풀어 봅니다.
이슬아 작가와의 인터뷰는 서울 성북구에 있는 ‘헤엄출판사’에서 이뤄졌습니다. 정릉동의 한 버스정류장에 내려 헷갈리게 굽어진 비탈길을 올라 땀을 삐질 흘리며 도착한 출판사는 2층 높이의 가정집이었습니다. 헤엄출판사를 세운 건 이슬아 작가 본인입니다. 한 달 만원으로 매일 글을 받아보는 ‘일간 이슬아’ 서비스로 이름을 알린 뒤 설립했습니다.
이 작가의 안내를 받아 2층 서재로 향했습니다. 서재는 가운데 위치한 작은 책상과 의자, 벽을 따라 둘러쳐진 책장이 보였습니다. 서재에 들어선 이 작가는 “담배를 피우시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이 작가는 “연초는 냄새가 남아서 조금 힘들지만 전자담배는 괜찮아서 있으시면 피우셔도 됩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담배를 태우지 않아 사양했지만, 취재를 함께한 카메라 기자 선배는 “너무 좋네요”라고 화답했습니다.
서재는 이 작가가 직접 생각하고 꾸민 공간입니다. 이 작가는 “돈을 많이 들여서 꾸미지는 않았어요”라며 “전에 살던 집주인이 버리고 간 나무 자재를 주셔서 출판사, 사무실, 작업실, 가정집을 겸하게 만들었습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책장에는 이 작가가 좋아하는 책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습니다.
서재에서 눈에 띈 건 만화책이었습니다. 이 작가가 아끼는 만화 중 하나는 ‘중쇄를 찍자’라는 작품입니다. 중쇄를 찍자는 일본 만화가 마츠다 나오코의 작품으로, 만화출판사 직원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편집자와 작가, 작가 지망생, 서점직원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이고 풍부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습니다. 동명의 드라마 작품도 있습니다. 이 작가는 “너무 재밌게 봤던 만화고 정말 좋아해요”라며 “한국에서는 출판업계 관련 드라마 중 좋은 게 별로 없는데 저건 진짜 일을 사랑하는 사람의 드라마”라고 칭찬했습니다.
이 작가는 차기작에 대한 생각도 내놨습니다. 이 작가는 “차기작은 '중쇄를 찍자'의 한국판 같은 것을 정말 하고 싶어 준비하고 있습니다”라며 “한국의 출판계 드라마를 배경으로 편집자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 작가는 “사실 편집자들이 없으면 작가들은 되게 나약한 존재”라면서 “편집장을 주인공으로 삼고 조명하는 드라마를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현재의 관심사도 ‘글의 영상화'인데요. 여성포럼 강연에서 이 작가는 장래희망에 '드라마 판권 팔기'라고 적기도 했습니다. 가녀장의 시대 같은 작품이 책에서 영상으로, 이슬아 작가가 드라마 작가가 되는 일도 먼 미래는 아닐 것 같습니다. 이 작가는 “지금까지는 책만 썼는데 제 글이 영상화되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라며 “쓴 책이나 판권을 팔고 싶다는, 드라마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는 뜻”이라고 부연했습니다. 이어 “좋은 이야기들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많이 향하고 있고 문장이었던 이야기가 배우와 영상연출을 통해 극대화됩니다”라며 “좋은 드라마도 같이 보면서 글을 쓰고 있어요”라고 얘기했습니다.
이날 인터뷰에서는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이들의 애로사항도 주고받았습니다. ‘매일 글을 쓰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 작가는 “아시잖아요. 힘들죠. 마감 직전에 급하게 닥쳐서 쓰는 편이라... 정확히는 마감 당일이 되지 않으면 긴장감이 안 들어서 잘 안 돼요”라며 웃었습니다. '방송에서 마감하는 모습을 봤다’는 기자의 말에 이 작가는 “사실 TV에서 나온 것보다 조금 더 초췌한 모습으로 하고 있죠”라고 답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글쓰기의 압박을 이겨낸 원동력은 ‘메모’라고 전했습니다. 이 작가는 “아이디어는 주로 일상에서 많이 가져오는 것 같고 별로 먼 데서 찾지 않는 것 같아요”라며 “메모해두지 않으면 마감이 닥쳤을 때 정말 빈털터리기 때문에 많이 해둬요”라고 털어놨습니다. 또 “지금은 제가 주변에서 소재를 잘 모으는 종류의 작가라는 걸 잘 알아요”라며 “주변 인물들이 한 명대사들을 잘 메모해두는데 시대가 아직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랑 내가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개인들의 이야기가 만나는 순간이 주로 글감이 됩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그 외에도 이 작가는 다양한 것들에서 영향을 받는다고 전했습니다. 이 작가는 “사실 넷플릭스를 자주 보고 힐링 이브라는 드라마를 굉장히 좋아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또 스웨덴 출판계를 그려낸 ‘러브 앤 아나키’나 여성들이 모인 교도소 이야기를 담은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도 좋아하는 콘텐츠로 택했습니다. 본인에게 많은 영감을 준 책은 대니 사피로의 ‘계속 쓰기’인데요. 이 작가는 “책 제목부터 환장하겠죠? 계속 써야 해서 읽었는데, 너무 도움이 됐어요. 이건 작가들의 작가가 쓴 책이더라”고 평가했습니다.
물론 콘텐츠 고민 외에도 피할 수 없는 고통이 많습니다. 육체적 피로감이 대표적입니다. 이 작가는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힘든데 잘해야만 해서 어려워요”라고 말했습니다. 작가 일이 순전히 정신적인 노동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육체노동에 가까울 정도로 고되다는 것. 이 작가는 “주변 작가들, 편집자들, 기자들 다 목과 허리에 디스크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정말 운동을 하고 몸을 관리하면서 써야 하는 것 같아요”라고 지적했습니다.
인터뷰는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작가는 “기사도 문장이 아름답고 힘 있을 때 집중해서 보게 되잖아요. 저도 신문의 칼럼을 쓰면서 가져가는 논리와 근거들이 있지만, 사실 옳은 얘기는 신문에 너무 많잖아요. 옳기만 해서는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기사도 사실은 문학적이어야 된다는 것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작가는 “글이 충분히 정치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어요”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이 작가는 “개인적인 이야기도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열려 있고 공부를 많이 하고 있으면 아주 정치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며 “공부가 부족해서 개인의 이야기로 그치는 경우가 좀 많았던 것 같아요”라고 회상했습니다.
어떤 글을 쓰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라는 대답이 바로 돌아왔습니다. 이 작가는 “재밌는 글을 쓰고 싶어요”라고 눈을 반짝였습니다. 이 작가는 “글로 웃기는 게 제일 어렵고 난이도가 높아요”라며 “유머를 쟁취하기가 참 어려운데 재밌는 글이 최상의 가치로 느껴져요”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 이 작가는 “이를테면 배운 사람이나 문학을 아주 좋아하는 독자들만 이해하는 글 말고, 고졸인 우리 엄마와 아빠 혹은 제가 가르치는 어린이들이 읽어도 이해가 안 가는 정도의 글쓰기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by 송승섭 아시아경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