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해보면 되더라고요. 안 되면 또 방법을 찾으면 되니까요."
외교통상부·유네스코·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선망의 대상인 국제기구를 거친 정지은 코딧(CODIT) 대표는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정 대표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이제껏 걸어온 삶의 경로는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세계 곳곳의 수재들이 모인 OECD에 '역대 2번째 한국인 공채'로 들어간 그는 정년이 보장된 직장에서 8년 만에 나와 귀국해 스타트업을 창업했습니다. 평탄한 길이 아닌, 스스로 가시밭길을 선택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 건 노력에 기반한 실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처럼 다 외워 오는 사람은 없었다"
정 대표는 학창 시절 영국으로 유학을 간 후 공공기관에서 일하겠다는 꿈을 꿨습니다. 대학에 진학해 '정치경제학'을 주전공으로 선택한 후부터 그는 정책 연구에 깊게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외교부에서 인턴으로 국제 행사를 주관하는 경험을 하면서 국제기구에 관심이 커졌습니다.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도중 시작한 유네스코 인턴 프로그램이 출발점이 됐습니다. 3개월간의 인턴 경험을 발판으로 정 대표는 OECD 공채 시험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400명 중 12명, 각 분과당 1명. 대부분의 지원자는 경제학 박사에다가, 20대는 많지 않아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20대 중반이자 석사 학위를 지녔던 그는 '이게 될까'라며 처음엔 스스로에게도 회의적이었다고 합니다. "총 6명이 파이널 관문에 올라갔는데 경쟁자 중에는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조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는 분도 있었어요. 제 경력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정 대표는 수개월간의 전형 과정을 거쳐 1999년 이후 두 번째 한국인 공채 합격자로 OECD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걸로 끝나는 건 아니었습니다. OECD는 2년에 한 번씩 승진 시험을 통해 외부 경력자들과 경쟁을 해야 자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야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구조인 셈입니다. 그렇게 5년을 버티고 정년 보장 심사(테뉴얼)를 거쳐 정 대표는 OECD의 정년 보장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는 OECD에서의 순간순간이 시험의 연속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단점이 많았던 것 같아요. 나이 어린 아시아인. 처음에는 사람으로 취급을 안 해요. 그러다가 앞에서 기조 발표를 하게 되면 '이 사람이 뭔가 있구나' 하고 다시 봐주더라고요."
남성·서양인 중심의 국제기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그의 비결은 부단한 노력입니다. 정 대표는 생각보다 많은 정부 부처나 국제 기구 사람들이 준비를 많이 하지 않고 온다고 전했습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발표 내용을 직접 외워서 숙지한 후에 발표를 하는 그가 단연 돋보일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저는 절대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남들은 제 얼굴을 보고 있지만, 저는 제 얼굴이 안 보이잖아요. 제가 동양인이든, 여자든 남들만 보이니까 제 이야기를 잘 듣고 있는지, 제 이야기가 정말 잘 전달되고 있는지에만 집중했어요."
'골든 케이지'에서 '현장'으로 뛰어들다
하지만 정 대표는 OECD에서 어렵게 얻은 정년 보장 자격을 미련없이 버리고 8년 만에 관둡니다. 그 역시 결심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국제기구는 그에게 '금으로 된 철장(골든 케이지)'과도 같았습니다. 국제기구에선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지만, 막상 실제 현장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기 어려웠던 탓입니다. "그 안에서는 무언가 중요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로 들여다봤을 때 각 정책은 그 나라의 현실을 모르고서 이야기할 수 없었어요. 현실과의 괴리가 크다고 느꼈어요."
현장에 발을 붙이고 싶다는 욕구가 그를 창업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정 대표는 곧장 한국에 들어와 '코딧'이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했습니다. 2020년 설립한 코딧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 등을 활용해 의안·법령·정책 등 데이터를 정리한 후 기업·공공기관에 제공하는 회사입니다. 각종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면서 한국에는 정책 데이터를 분석해 제공하는 '아카이빙 서비스'가 없다는 데서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SNS, 국회 회의록에는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 지금의 정책과 기업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창업은 다시 바닥부터 시작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각 국가 대표를 상대하는 국제기구와 달리, 스타트업은 일반 기업을 직접 상대해야 했습니다. 코딧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 정 대표는 타깃 기업을 돌며 직접 영업을 했습니다. 영업을 하면서도 그는 주눅들지 않았습니다. 서비스를 파는 것보다는, 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 덕에 고객 업체의 마음을 얻고, 또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무작정 문을 두드린 결과, 코딧은 2년 만에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투자 규모만 50억원대, 1년 반 사이 8개의 특허를 출원한 회사가 됐습니다. 10명 정도의 고객으로부터 시작해 이제는 1000개 가량의 기업이 이용하는 서비스가 됐습니다. 코딧은 국내를 넘어 해외 정책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확장 작업을 진행중입니다.
"도전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성공"
그가 매번 도전할 때마다 주변에선 곱지 않은 시선도 많았습니다. 직장을 관두고 창업에 도전할 때 그의 부모는 '왜 좋은 직장을 버리고 나오려고 하느냐'며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정 대표는 "조금 더 일찍 했으면 좋았겠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이왕 하고자 할 거면, 더 빨리 했으면 좋았겠다 싶을 정도로 후회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는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이미 코딧을 시작하고 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성공'이라고 봤습니다. "얼마를 벌었는지보다 뭘 배웠고, 어느 정도 성장했고, 이걸 가지고 뭘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건지가 더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모든 것을 쏟아붓는 시기가 인생에서 한 번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이 끓으려면 100도가 돼야 하는데, 50도 정도에서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걸 한 번 뛰어넘어보면 그 다음이 열리는 것 같거든요." 정 대표는 자신처럼 도전하는 여성 리더들에게 이같이 전했습니다. 국제기구에서 정책 전문가를 꿈꾸던 그는 이제 '창업가 정신'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