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이 ‘우주 탐사’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기관, 나사(NASA·미국항공우주국). 10개의 산하기관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필드센터인 버지니아 랭글리 연구소(Langley Research Center)에서 14년째 매일 우주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한국인 여성 연구원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김현정.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와 KAIST 대학원에서 재료공학을 공부한 순수 국내파인 그는 나사의 일원으로서 남다른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김 연구원의 주 연구 분야는 행성 탐사에 사용될 소재입니다. 달 탐사에 사용될 ‘정전발전 장치’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정전 발전 장치는 기존의 달 탐사선과 다른 시스템의 전원이 될 수 있고 우주복을 입은 인간에게 끼치는 부작용도 완화시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동안 그가 창의적인 발상과 지독한 노력 끝에 수상한 상은 일일이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로 많습니다. 그는 2009년부터 2018년까지 ‘나사 멘토 감사상’을 일곱 차례 수상했습니다. 2012년에는 ‘미국 항공우주공학협회 햄튼 지부 올해의 젊은 과학자상’을, 2020년에는 ‘나사 핸리 리드 우수 논문상’과 ‘나사 우수기술성취 메달’을 받았습니다. ‘나사 우수 연구팀상’은 물론 ‘나사 특허상’도 세 차례나 받았습니다.
이 중에서도 그가 스스로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상은 ‘나사 우수기술성취 메달(ETAM)’. 이것은 나사 미션에 중대한 기여를 한 기술을 개발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것으로 그동안 그가 ‘내가 하는 이 연구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까?’ 혼자 고민하며 실험실에서 묵묵히 해나간 연구들이 동료들에게 인정받았음을 입증하는 징표이기 때문입니다.
"불평할 시간에 어려움 극복할 방안 마련해라"
그는 한국에 계신 아버지께 고민을 털어놓았고 아버지의 대답은 간명했습니다. "그럼 원래 레시피와 너의 레시피 둘 다 해서 비교 증명을 해봐. 네가 맞다는 것을 말이 아닌 실험과 데이터로 보여 주고 너에 대한 신뢰를 쌓게 해. 그러면 그 다음 일은 쉬워질거야”라고. 그때 그는 "지금도 쉴새 없이 바쁜데 어떻게 두 개를 다 하느냐"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아버지는 "이렇게 불평할 시간에 해서 보여줬으면 이미 하고도 남았겠다"라며 독려했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조언대로 저는 두 개의 실험으로 제 방식이 옳다는 것을 보여 주었어요. 그랬더니 상사가 이전 레시피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후론 제가 하는 모든 연구를 믿고 지원해주었지요. 이 일로 문화가 다른 곳에서 인정받고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에 신뢰를 쌓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고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사 연구소에서 가장 큰 경쟁력은 무엇일까요. 김 연구원은 주저하지 않고 '신뢰'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나사에는 정말로 똑똑한 사람이 너무나 많다"고 재차 강조하며 가까운 동료인 가프리 박사와의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거의 1년 동안 생각해 내용을 정리한 아이디어를 동료인 가프리 박사에게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그는 짧은 시간에 수학 공식에 물리학 이론까지 가져와서 일목요연하게 제 아이디어가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하더라고요. 저는 엄청난 자극을 받았고 집요하게 더 깊이 파고들어 이론을 다지고 실험으로 검증해 결국 제가 맞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어요. 노력으로 지능을 이겼다고 할까요(웃음). 이 일로 가프리 박사는 저를 더욱 신뢰하게 됐고 지금은 소울메이트가 되었지요.”
그렇게 학회를 마치고 돌아와 카이스트의 실험실로 출근한 그에겐 "졸업과 동시에 박사후 연구원으로 채용하고 싶다"는 나사 연구원의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당시 그가 박사과정에서 하는 연구는 반도체 관련 연구였고 나사 연구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습니다. 물론 그가 사용하던 장비(박막 제작을 위한 진공 장비)와 재료 공학 지식은 나사 연구원이 진행하고 계획하는 연구에 도움될 소지가 있기는 했습니다. 또 그가 카이스트에서 배우고 익힌 지식과 경험이 나사 연구원이 당시 진행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포괄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16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그가 나사 연구원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니, 다른 이들이 가길 꺼리는 등산을 흔쾌히 동행하는 모습에서 '이 사람은 뭘 시켜도, 그 일이 험난하고 남이 안 하고 싶어 하는 것일지라도 씩씩하게 해내겠구나'하고 신뢰를 느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의 업무는 꿈속에서 새로운 꿈 꾸는 것"
김 연구원은 "나사는 흔히 말하는 꿈의 직장이 맞다"며 "저의 업무는 꿈속에서 일하면서 매일 새로운 꿈을 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나사에서 그를 성장으로 이끌어준 좋은 인연만 만난 것은 아닙니다. 아시아인 여성이라고 은근히 무시당한 적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는 "어떤 이들은 본인들 기분 풀자고 저를 자극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런 경우엔 그냥 무시한다"며 "그들이 던진 쓰레기 봉지를 선물처럼 끌어안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김 연구원은 정신적으로 지치고 힘들 때마다 어머니의 손편지를 꺼내 가슴에 새깁니다.
그에게 가족은 사람과 사랑을 배우는 가장 기본적인 바탕입니다. 그는 "가족들과 대화하며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이 든든하기에 세상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었다"며 "아버지에게 용기를 배웠고 어머니에게 지혜를 배웠다"고 자랑스레 말합니다.
현재 솔로인 그가 바라는 다음 점(點)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그가 도달하고 싶은 점은 어제보다 나은 자신의 모습으로 마지막 점을 찍는 것입니다. 그가 지금까지 그려온 선을 봤을 때 그것은 이미 확정된 미래인 것 같습니다.